본 게시글은 2015년에 게시된 ' 예전에 봤던 괴담. 어떤 사람이 방 구해서 살면서 가위 눌리기 시작했음. '을 각색하여 만든 일기 형식의 오컬트 로맨스 단편 소설입니다.
BGM을 틀어두시고 감상하시는 걸 적극 권장합니다.
https://theqoo.net/square/1029813685 (원본 찾을 수가 없었음.)
BGM - https://youtu.be/nKa7VIn-9Is
2019년 4월 3일
이상한 꿈을 꿨다. 웬 단발머리 여자가 내 목을 조르며 나가라고 소리를 쳐댔다.
얼굴은커녕 사람의 형체만 흐릿하고 새카맣게 보여서 정말 무서웠다.
가위 눌릴 때랑 느낌이 비슷했다. 왠지 자취 초기부터 예감이 좋지 않다.
2019년 4월 4일
그 여자가 또 꿈에 나왔다. 여전히 나가라고 고성방가를 해댔다.
그러면서 또 내 목을 졸라대는데, 이상하게 아프거나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꿈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귀신이 사람한테 물리적 피해를 입힐 수 없는 걸까?
밤 내내 무서운 경험을 해서 영 기분이 좋지 않다.
2019년 4월 7일
세 번이나 같은 내용의 꿈을 꾼 건 손에 꼽는다.
내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월세 내는 건 생각도 안 하고 자꾸 나가라 한다.
질문이라도 하고 싶은데, 꿈이라 그런지 말이 잘 안 나온다.
윽윽 저항하는 소리를 내는 거 말고는 입술을 떼기 어렵다.
2019년 4월 12일
전날 밤도 어김없이 그 여자에게 해코지를 당했다. 피곤하고 괴롭다.
이대로 계속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나는 그 여자와 친해져서 집에 쭉 눌러앉을 계획이다.
그도 그럴게 이 주변에는 이렇게 싼 월세의 방이 전혀 없단 말이다.
꿈에서 그 여자와 대면할 때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내가 깨어있을 때 말을 전해두기로 다짐했다.
오늘은 낮에 외출하기 전에 ‘다녀오겠습니다 누나.’라고 말했다(형체를 대충 보면 분명 나보다 누나인 게 틀림없다).
앞으로 매일 인사하고 나가야지.
2019년 4월 18일
역시 또 그 꿈을 꾸었다.
똑같은 꿈을 자주 꾸다보니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무서운 건 변함없다.
그 여자가 더 이상 해코지를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친해져야 한다.
외출을 하지 않는 날이라 그 여자에게 어릴 적 키웠던 강아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2019년 4월 22일
오늘은 평소와 달리 외출이 길어질 것 같아서 tv를 켜두고 갔다.
나가면서 ‘누나 저 오늘 늦으니까 tv 보고 계셔요.’라고 했다.
근데 귀신도 tv 보면 재밌어 할까?
2019년 5월 8일
오늘은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었는데, 깜빡하고 tv를 꺼둔 채 인사만 하고 집을 나가버렸다.
집에 돌아오니 선반에 놓인 조그마한 화분이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화난 게 틀림없다.
2019년 5월 9일
아니나 다를까 그 여자가 꿈에 나왔다. 평소보다 더 심하게 해코지 당했다.
2019년 5월 16일
어젯밤 오랜만에 그 여자 꿈을 꿨다. 나흘 동안 나타나지 않더니, 성불이라도 한 줄 알아서 내심 기뻐했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근데 이번은 평소와 달리 해코지는 안 하고 벽장 안에 가만히 앉아 나를 지켜보기만 했었다.
늘 틀어줬던 tv가 재밌었던 걸까? 이제 잠 잘 때 빼고는 상시에 틀어두는 게 좋겠다.
전기세 걱정보다 그 여자가 얌전해지는 게 우선이다.
2019년 5월 19일
그 여자,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얌전하지? 꿈에서 며칠째 그냥 벽장에서 지그시 쳐다만 본다.
정말 말 걸고 tv 틀어주는 게 효과가 있는가 보다.
2019년 5월 21일
친구와 크게 싸우고 오랜만에 혼자 술을 마셨다.
평소엔 술을 마실 때 미디어에 집중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왠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허공에 대고 그 여자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쭉 이야기 했다.
일방적이긴 했지만 그 여자가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준 기분이었다.
기분도 좋으니 밤새 tv를 틀어줄 거다.
2019년 5월 30일
밖에서 사먹기만 하는 생활이 지겨워 요리책을 샀다.
오늘은 맨 앞 페이지에 나와 있는 간단한 버섯볶음을 만들어 봤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게 있었다. 제사상에도 밥과 반찬이 올라가는데, 그 여자도 밥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저와 밥그릇을 두 개씩 두었다.
‘한 번 차려본 건데 맛이라도 봐주세요.’라고 한 뒤 수저를 들었다.
나름 정성스레 만든 음식인데, 먹어줬으면 좋겠다.
2019년 5월 31일
그 여자가 꿈에 나왔다. 내 앞으로 다가와 쥐방울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맛있어.’
역시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귀신도 밥을 먹을 수 있나 보다.
그리고 가만 보니 나가라고 소리 지를 땐 몰랐는데, 그 여자 나름 목소리가 예쁘다.
2019년 6월 7일
어느새 부턴가 그 여자는 내 목을 조르지 않는다. 나가라고 소리치지도 않는다.
가끔 꿈에 나와서 나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한다. 점점 얼굴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이틀 전에는 요리책 마지막 장에 있는 어려운 메뉴인 동파육을 만들려다가 다 태워먹었는데, 오늘 꿈에서 그 여자가 친히 ‘맛없어.’라고 대답해줬다.
나도 다 안다는 듯이 침울한 표정을 지으니 살짝 웃은 것 같기도 하다.
웃는 귀신은 되게 위험하다 했는데, 왠지 별로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다.
2019년 6월 21일
꿈에서 그 여자가 하는 말이 나름 풍부해졌다.
원래는 ‘응, 아니, 맛있어’처럼 단답만 가능했었는데 이제 문장도 구사할 줄 아는 것 같았다,
꿈에서 얌전히 앉아있더니, tv를 가리키며 ‘나 혼자 산다가 재밌어.’라고 말을 했다.
앞으로는 그 방송이 나오는 채널을 위주로 틀어둬야겠다.
물론 살아생전 사람이지만, 점진적인 변화가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나중에는 평범하게 대화도 할 수 있을까?
2019년 6월 28일
이 집에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의식하고 있지 않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이사한 뒤로 남들에게는 절대 말하지 못하는 신기한 일들을 겪고 있다.
귀신과 같이 살며 대화까지 한다니, 누가 보면 정신병자로 생각할 게 뻔하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때 용기를 내서 인사를 먼저 건넨 게 참 다행인 것 같다.
처음엔 정말 무서웠고 어떤 용기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와 나름 친구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2019년 7월 6일
최근 들어 반찬 투정이 는 것 같다.
매일 퇴근 후 장을 보고 음식까지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웬 꿈에 불쑥 나타나 어제 해준 갈치조림이 마음에 안 든다며 화를 내다니.
당분간은 굶겨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만. 내일부터 며칠간은 외식만 할 거다.
2019년 7월 9일
외식만 사흘 째, 집에 오니 잘 진열해둔 책이 모조리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밥을 안 챙겨주니 화가 났나 보다. 그래서 허공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반찬 투정 부리면 다시는 밥 안 차려줄 거예요.’
알아들었으면 꿈에 꼭 나타나라고.
2019년 7월 10일
꿈에서 사과 받았다. 내가 이겼다.
그래도 미안하니까 내일은 갈비찜 만들어 줘야지.
2019년 7월 20일
어제는 꿈에서 처음으로 그녀의 형체가 새까만 게 아닌, 진짜 사람처럼 보였다.
눈코입 제대로 달린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다. 정말 예뻤다.
나는 귀신이라고 하면 피범벅에 소름끼치는 얼굴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반전이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었으면, 들이댔을지도 몰라.
2019년 7월 23일
일을 하는데 자꾸 그 여자 얼굴이 생각났다.
살아있을 땐 정말 한 미모 했었겠지.
2019년 8월 2일
퇴근 후 거리에서 전 여자친구를 봤다. 3년이나 사귀었는데 바람을 폈던 못된 애였다.
헤어지기 전 마주쳤었던 바람의 대상(현재 남자친구겠지)과 팔짱을 끼고 걷고 있었다.
그 애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서는 현 남자친구의 시선을 에두르며 걸음을 유난히 빨리 했다.
집에 돌아와서 혼자 술을 마셨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부여잡듯 울어댔다.
오늘은 그게 다였다.
2019년 8월 3일
그 여자가 꿈에 나왔다. 묵묵히 쳐다만 보다 건방지게 나를 끌어안았다.
귀신 주제에 뭘 안다고 ‘괜찮아’라며 나를 쓰다듬었을까.
하지만 그 품은 따뜻했다. 단순히 차갑다 뜨겁다가 아닌, 출처를 알 수 없는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의 품은 따뜻했다. 세상에서 제일, 죽을 만큼 따뜻했다.
2019년 8월 4일
출근하기 전, 어제의 일이 괜히 민망해서 평소보다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나왔다.
평소처럼 ‘누나 다녀올게요!’를 외친 뒤 살며시 ‘고마워요’를 혼잣말로 속삭였다.
그녀가 들었다면 참 부끄러울 것 같지만, 그래도 꼭 전해졌으면 한다.
2019년 8월 17일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집에 막 들어왔을 때쯤, 어째서 그녀는 나보고 나가라며 그렇게 호통을 쳐댔을까?
오싹한 기억이지만, 왜 그렇게까지 자신의 터를 지키려 했는지 궁금하다.
궁궐도 아니고 좁은 단칸방 한 채인데,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꿈에선 말을 못하니까 이거 다 쓰고 잠들기 전 꼭 물어봐야겠다.
2019년 8월 18일
꿈에 그녀가 나왔다. ‘어제 물어본 거 말이야..’라며 입술을 뗐다.
그녀도 이제 평범한 사람처럼 문장을 구사할 줄 안다. 천천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그녀는 어머니와 단 둘이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했다.
큰 상실감에 시달렸던 그녀는 어머니와 서로 의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사춘기 소녀처럼 멀리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미 떠나버린 아버지처럼 어머니 또한 금방 떠날 것이라 생각했었겠지, 사별의 고통은 가히 말할 수 없이 깊었을 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홀몸으로 그녀를 키우는 어머니에게 점차 큰 애틋함을 느끼게 되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그걸 깨달은 뒤로 그녀는 비행도 멈추고 공부와 집안일 보조에 전념했다고 한다.
이 방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첫 취직 기념으로 선물해 준 방이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음주운전 뺑소니였다. 범인은 이후 선례로 기록될 정도로 낮은 형량을 받았다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난 날, 그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이 작은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 속에서 잠들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누구도 들이고 싶지 않았다 했다. 그게 그녀의 이야기 전부였다.
이야기를 듣고, 그녀에게 처음 인사를 건넨 날이 더욱 소중해졌다.
2019년 8월 19일
오늘은 눈을 뜨자마자 그녀와 이야기를 했다.
물론 대답을 들을 수 없는 혼잣말이나 마찬가지지만, 마침 쉬는 날이기도 해서 하루 온종일 집에서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값싼 위로가 되지 않게 최대한 말을 골라가며 했다. 그걸 고민하는 모습까지 그녀는 전부 지켜봤을까 싶어 부끄러웠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위로의 말을 그녀에게 전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밥 먹고 씻는 시간을 제외하면 내내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뱉은 말 중 한 마디라도, 그녀에게 온전히 다다랐으면 좋겠다.
2019년 8월 25일
요즘 들어 꿈에서 그녀가 나를 껴안고 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껴안고 있다.
이제 사람처럼 말도 술술 하면서 왜 말 한 마디를 안 하는 거야.
뭐라도 말 좀 해봐 민망하잖아.
2019년 9월 8일
어젯밤 웬 일인지 그녀가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tv 혼자 보는 거 재미없어. 내일은 자기 전에 틀어놓고 꿈에서 같이 보자.’
솔직히, 퇴근 후에 몹시 피곤한 상태로 tv를 틀어놓고 자는 건 힘들다.
하지만 그녀가 한 번만 해 달라 한 거니까.. 정말 오늘만 해주는 거야.
‘두 달 전에 개봉한 로맨스 영화 보고 싶어.’ 가지가지 부탁한다.
그래, VOD 결제까지 해서 보여줄게. 진짜 이번만이다.
2019년 9월 9일
어제는 예정대로 tv를 킨 상태로 잠에 들었다. 그녀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영화를 봤다.
사실, 꿈 속이라 현실만큼 선명하지는 않았다. 배우들 얼굴이 보일랑 말랑 하는 정도.
그래서 그랬겠지만, 영화보다 그녀에게 더욱 집중이 되었다.
작중 등장인물의 배신 장면에 자기가 당한 것 마냥 화도 내고, 주인공의 이별 장면에서는 눈에 수도꼭지라도 달린 듯 눈물을 펑펑 흘렸다.
너무 감정적이기 짝이 없다. 나 없이 집에서 혼자 tv 볼 때도 이랬었구나 싶다.
그녀에게 한 눈이 팔린 사이 눈이 마주쳤다. 그 뒤로 한동안 서로 어색하게 tv를 바라보며 침묵을 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또 금방 영화에 몰입했다.
영화가 끝나고서 그녀는 신나게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뭐 배우의 연기가 어떻다느니, 연출이 어떻다느니..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다음에도 다시 보여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음날이 쉬는 날일 때만.
2019년 9월 20일
어제는 그녀가 꿈에서 집을 비워둔 사이 있었던 한 일화를 얘기해줬다.
창문 밖으로 날아온 참새와 재잘재잘 대화를 나눴던 모양인가 보다.
‘아무리 귀신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동물하고 대화를 할 수 있어요?‘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눈치를 챘는지 ’진짜로 얘기했거든!‘이라 말하며 볼을 부풀렸다.
그러더니 곧이어 내 품에 달려들어 머리를 부볐다.
부쩍 애교가 잦아진 것 같기도 하다.
2019년 10월 7일
내일은 나의 스물일곱 번째 생일이다. 여태까지 스스로 생일은 한 번도 챙겨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메신저로 선물과 축하메시지를 보내왔다.
아니나 다를까 자정이 지난 지금, 일기를 쓰는 도중에도 알람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이런 친구들을 두고 있는 내가 자랑스럽다.
2019년 10월 8일
믿기지 않는 일이 생겼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꿈 속이었다.
원래라면 잠에 들자마자 눈앞에 있어야 할 그녀인데, 웬 일인지 책상 앞에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한참을 열심히 끄적거리더니 종이 한 장을 들고 내게 달려왔다.
그녀가 들고 있는 종이에는 읽기 힘든 조잡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H APPY BI RTH DA Y’. 그러면서 자랑스러운 듯 싱긋싱긋 웃는 얼굴이 귀여웠다.
놀란 표정으로 한참을 바라보자, ‘어제 친구들한테서 생일 축하 메시지 오는 거 봤어. 생일 축하해.’라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어쩌면 그녀가 날 처음 안아줬을 때보다 더 따뜻했을지도 모른다.
정말 오랜만에 직접 받는 생일 축하였다.
2019년 10월 22일
새삼 돌이켜보니,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
취직한 김에 자취를 해보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들어온 거니까, 다른 방을 구해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친구도 별로 없는 나는 분명 심심해했을 거다.
물론 열정과 달리 지갑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이 방을 고른 거지만, 그 씁쓸한 상황이 나에게는 정말 필연적인 선택이었구나.
내가 그때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돈을 더 내더라도 다른 방으로 옮겼다면, 나는 그녀와 대화는커녕 그녀의 얼굴도 보지 못했겠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내 생활 습관도 나름대로 바꾸어줬다.
집을 비우면 그녀가 자주 물건을 떨어뜨려 놓으니, 바닥에 무엇이 떨어져 있나 살피며 동시에 하루 한 번은 청소하는 버릇도 생겼고.
내 식습관이 불만이라 시작한 거긴 하지만, 그녀를 위해 밥을 차리며 요리를 하는 법도 배웠고(그녀가 없었으면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외식했을 게 틀림없다).
일기도 원래는 몇 달에 한 번쯤 쓸까 말까 했는데, 이젠 자주 쓰게 됐고.
그 이외에도 그녀를 통해 알게 모르게 바뀐 내 모습이 많이 보였다.
무서운 첫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조금씩 열어주었다.
이제는 그녀가 없으면 조금, 아니 많이 힘들 것 같다.
2019년 11월 2일
퇴근 후 장을 보던 중 썩 유쾌하지는 않은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였다. 아버지의 병세가 심해져 집으로 복귀하라는 이야기였다.
어머니께서 비교적 젊은 나이로 치매를 앓고 계신 아버지를 혼자서만 돌보는 게 많이 지친 모양이시다. 외동인 내가 같이 힘을 보태드려야 한다.
운전을 한다면, 집에서도 회사로 출근하기엔 큰 무리가 없다. 돌아갈 준비를 해야 되겠지.
일주일 내로 준비하라고 하셨으니, 서둘러야겠다.
그녀에게는 어떻게 말할까..
2019년 11월 3일
평소처럼 퇴근 후 식사를 하고 어제 들은 이야기를 통보했다.
이야기하기까지 조금 많이 머뭇거렸지만, 담담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설명하면서도 속으로 미안해했다. 당장 전날 밤 꿈에서도 내게 볼을 부비던 그녀였는데, 갑작스럽게 이별하게 되는 건 많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거진 7개월을 함께 했으니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겠지. 그리고 생전 가슴 아픈 이별을 이미 두 번이나 겪었던 그녀니까.
어렵겠지만,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2019년 11월 4일
어젯밤은 그녀가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초기에는 며칠 안 나타날 때도 있었지만, 친해지고 나서는 정말 매일같이 나타났단 말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나? 아니면 어제 이야기가 조금 충격적이었나?
그녀 나름의 사정도 있는 법이니 기다려 보자.
2019년 11월 5일
어젯밤도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이틀 전 했던 일방적 통보가 많이 상처였던 걸까.
그래도 헤어지기 전에 최대한 많이 만나고 싶은데.
잠들기 전에 ‘누나, 그만 숨고 꿈에 나타나줘요.’라고 말하고 자야겠다.
오늘은 꼭 보러 와줄 거지?
2019년 11월 7일
통보 후부터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원래라면 출근할 동안 집에 물건들도 한 두 개씩은 떨어져 있는 게 정상인데, 요즘은 퇴근 후에도 기분 나쁠 만큼 깨끗하다.
이 집을 나간 건 아닐 텐데, 분명 어딘가에 꿍하고 앉아 있을 게 뻔한데.
직접 얘기라도 해야 마음이 풀리지. 이렇게 며칠째 말도 없이 사라지는 게 어디 있어.
제발 나타나달라고 허공에 대고 몇 시간이나 이야기하는 것도 이제 지쳐.
그냥 이제 제발 나타나줘. 널 최대한 많이 내 눈에 담고 싶어.
평소처럼 내게 안겨서 날 쳐다봐줘. 안 귀찮아 할 테니까 물건도 막 건드려서 떨어뜨려놔 줘.
네가 좋아하는 갈비찜도 했는데, 먹은 거 맞지? 오늘은 꼭 대답해줘.
내가 다 미안하니까.. 그냥 얼굴이라도 한 번만 보여줘..
2019년 11월 9일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이른 아침부터 이사를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부탁했는데도 그녀는 얼굴 한 번 보이지를 않았다.
그래서 나는 최후의 수단을 썼다. 어쩌다 웹서핑용으로만 한두 번씩 쓰던 노트북을 켰다.
윈도우 메모장을 켜고 그녀가 늘 애착 있게 앉아있던 벽장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누나. 오늘 정말 마지막 날이에요. 저 내일 가니까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할게요. 꿈에 나타나는 건 이제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여기 노트북에.. 뭐라도 써주세요. 저한테 하고 싶은 말 무엇이라도요. 누나 연필로 글씨도 쓸 줄 알고 물건도 움직일 줄 알잖아요. 키보드도 분명히 쓸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얘기하다 가는 건 정말 싫으니까.. 여기에 하고 싶은 말 뭐라도 적어줘요.’
그 이후 앉은 자리에서 3시간을 기다렸다. 새벽이 돼 졸음이 쏟아져도 기다렸다.
안 써줄 거냐고 떼도 써보고, 그만 좀 하라고 화도 내봤지만..
그녀는 끝내 한 글자도 적지 않았다.
일기도 다 썼으니 이제 자보려 한다.
네가 참 밉다.
2019년 11월 10일
눈을 뜨고 나니 노트북은 펴진 채로 전원만 꺼져있었다.
배터리가 다 됐다 보다. 그대로 접어두고 이사를 진행했다.
완전히 떠나기 전, 꽃집에 들러 국화꽃 한 송이를 방 벽장에 두고 왔다.
그리고 인사했다. ‘누나 안녕히 계세요.’ 그 후 뒤도 보지 않고 떠났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의 병세가 확실히 심해졌다는 게 체감이 됐다.
집으로 돌아온 건 정말 잘한 일이다. 하지만 가슴이 터질 만큼 아프다.
내게 마지막 인사 하나 해주지 않은 그녀가 밉기도 하고, 그녀에게 또 한 번 이별의 상처를 준 나의 사정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산 사람은 산 사람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짐을 옮기며, 이사 전 원룸에서 쓰던 물품들은 전부 창고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다.
보다 보면 자꾸 생각날 것 같아서 그랬다.
그녀를 잊고, 영원히 묻어두자.
2019년 12월 17일
이사한 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이 일기장을 꺼내 쓰는 것도 한 달 만이다.
요즘은 정신없이 병간호와 일을 병행하다 보니, 자취할 때만큼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요리는 어머니가 전부 하신다. 어머니의 집밥은 역시 맛있다.
그래도 가끔은 그녀에게 맛 평가를 받으며 만들었던 나의 요리가 생각난다.
다시 만들어 먹으면 더 생각날까봐 요리는 아예 하지 않고 있다.
나름대로 그녀를 잊은 것 같아 후련하다.
아마 이 일기를 쓰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
.
.
[ 2023년 3월 31일 PM 01:43 ]
정말 오랜만에 열어보는 일기장이네. 거의 4년 전에 마지막으로 쓴 거구나,
그때 그 누나랑 놀았던 게 그대로 다 적혀있어.
한 페이지 읽을 때마다 눈물이 조금씩 난다. 아직 완전 잊지는 못했구나 내가.
전부 지워버렸다 생각했는데, 그냥 꺼내보지 말 걸.
아니 그냥 창고 정리를 하지 말 걸 그랬나 보다.
[ 2023년 3월 31일 PM 02:57 ]
아직 20대 때라 그런지 지금보다 글도 엄청 잘 쓰는구나.
이제는 저런 일기는커녕 유튜브 댓글 하나 다는 것도 피곤해 죽겠는데.
한 시간 씩이나 이걸 곱씹어 보는 나도 참 미련 곰탱이야.
[ 2023년 3월 31일 PM 03:10 ]
가만 보니 저기 노트북도 있구나.
업무용이 아니라 원체 잘 안 쓰던 놈이기도 했고, 그때 이후로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할까.. 아무튼 여러 이유로 4년 동안 열어보지도 않았는데.
이번에 아버지 요양보호사 알아볼 때 좀 써봐야겠다. 전원은 들어오려나?
[ 2023년 3월 31일 PM 03:16 ]
그래도 충전기 꼽고 조금 있으니까 전원은 들어오네.
옛날에 설정해뒀던 피카츄 배경화면 아직도 그대로네 ㅋㅋ.
우선 크롬 먼저 설치해야겠지.. 가만 보자..
🗎제목 없음.txt? 이게 뭐지?
.
.
.
제목 없음 – Windows 메모장 ㅡ □ X
파일(F) 편집(E) 서식(O) 보기(V) 도움말(H)
----------------------------------------------
미 안했ㅅ ㅇ ㅓ
고 ㅁ ㅏ 웟 어
너무 무 ㅅ ㅓ웟어
너 랑 떨ㄹㅇ ㅓ 지는ㄴ ㄱ ㅔ
글[f래도 s너랑
ㅎㅏa께 해서 제이,ㄹ
행복r 핶ㅆ ㅇ ㅓ
사랑해
기ㄷ다릴ㄹ r게
ㅡ
----------------------------------------------
.
.
.
[ 2023년 4월 1일 AM 11:36 ]
“....”
“네 부동산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집 관련해서 연락드렸는데요.”
“네네 말씀하세요.”
“혹시 송파 한천원룸/투룸 남은 방 좀 알 수 있을까요?”
“송파.. 한천이요.. 잠시만요..”
“....”
“확인해보니까 지금 102호랑 403호 공실인데, 102호는 지금 계약자분이 집 상태 보고 간 상황이고 403호는 공실이긴 해요.”
“.. 403호가 공실이에요?”
“네. 일단은.. 공실이긴 합니다.”
“아.. 그게.. 제가 계약할 건 아니고.. 4년 전에 살았던 집인데요. 혹시 집주인 분 허락 구하고 잠시만 방 좀 보고 가도 될까요? 4년 전에도 사장님 통해서 계약했거든요.”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박OO입니다.”
“잠시만요..”
“....”
“아 네 4년 전에 7개월 정도 거주하셨죠? 혹시 따로 구경하시려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아.. 그냥 뭐.. 혹시 그 쪽으로 다시 가서 살 수도 있고.. 그래서.. 한 번 살아봤던 집이 더 편하니까.. 뭐 그런 이유죠.”
“네 뭐, 집주인 분한테는 제가 연락 드려볼게요. 근데 거기가 한 3년째 공실이라서 집주인 분이 완전히 허락하실지는 미지수거든요.”
“3년째 공실이요?”
“네. 단기 임대도 아닌데 계약하시는 분마다 자꾸 반복적으로 퇴실을 해서요. 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도 있어서 그런지 월세가 싸도 세입자들이 얼마 안 가 나가더라구요. 그래서 집주인분이 박OO씨 나가시고 1년 후에 아예 임대를 막아버렸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 말씀드릴 때도 ‘일단’은 공실이라고 한 거구요.”
“아...”
“뭐 그럼 우선은 집주인 분한테 말씀 남겨드릴 테니까 더 알아보실 거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네네.”
“....”
[ 2023년 4월 2일 PM 02:01 ]
“여보세요?”
“아 네네.. 저 맞아요. 안녕하세요.”
“네 그동안 잘 지내셨죠? 아 네네.”
“아 혹시 그 쪽으로 또 갈 일 생길 수도 있어서.. 네.”
“아 제가 가장 오래 살았었어요? 아 그렇구나..”
“네 사정 다 전해 들었어요. 번거로운 부탁드려서 죄송합니다.”
“아유 아닙니다. 네.”
“정말요? 아이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또..”
“아니요 아니요, 허락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번거로우실 텐데..”
“네네 감사합니다. 아 내일 당연히 괜찮습니다. 네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내일 집 앞에 가서 연락드릴게요.”
“네네 감사합니다. 네~.”
[ 2023년 4월 3일 AM 10:21 ]
‘아 어머니 여기에요!’
‘아이고.. 총각, 그동안 잘 지냈어?‘
’안녕하세요 어머니. 진짜 오랜만에 뵙는 거 같아요.‘
’그러게나 말이야 이사할 때 이후로 처음 보네. 어이구 못 본 사이에 더 건실해졌네~. 총각 이제 30대인가?‘
’네 맞아요. 어머니도 못 본 새 더 젊어지신 거 같아요.‘
’별 말을 다 해.. 총각이 세입자 중에서 집을 제일 깨끗하게 써서 마음에 들었는데.. 총각 나가고 다들 더럽게 쓰다 금방 나갔지 뭐야. 세상에, 공실 만드는 것도 모자라 아주 집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놨었다니까.‘
’아이고.. 그렇구나. 마음고생 많으셨겠어요.‘
’응 그럼. 그래서 총각 같은 세입자 또 안 들어오나~.. 하다가 그냥 일시적으로 임대를 막아버렸어. 그리고 3년이나 지났네.. 총각 밥은 먹었어?‘
’아 네, 아직 안 먹었어요. 집 구경하고 혹시 괜찮으시면 식사라도 같이 하실래요?‘
’나야 좋지. 자 여기, 집 비밀번호 적힌 쪽지야. 나는 여 앞에 시장에 잠시 맡기고 온 물건 있어서 가지러 갈 테니까, 천천히 방 구경하고 다 보면 나한테 전화해.‘
’네네. 감사합니다. 금방 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래~.‘
’네네.‘
.
.
.
뚜벅 뚜벅. 이 계단을 걷는 것도 오랜만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그때는 참 불편했지.
그래도 나름 운동도 되고 좋았어.
열심히 오르다 보니 벌써 문 앞에 다다랐구나.
때가 묻어 더 볼품없어 보이는 대문의 조잡한 무늬도 그대로다.
바보 같이, 이런 사소한 추억만 생각하려고 했는데.
괜한 기대를 품고 그녀를 떠올리게 된다.
다 지난 일이라 여겼는데,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며 나는 소리에도 그녀의 얼굴이 생생히 떠오른다.
정말 예뻐서 잊을 수가 없었다. 돌이켜 보니 나는 그녀를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회사일과 집안 사정으로 마음이 지쳐있을 때마다 어느새 그녀를 떠올렸었다.
기쁜 일이 있으면 그녀에게 제일 먼저 알려주고 싶었고, 고민이 있으면 그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이미 세상을 뜬 귀신일 뿐인데. 이어질 수 없는 사랑인데.
순리에 어긋난 일인 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녀의 맡에서만 머물렀다.
멍청하다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기대하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역시 ’한 번만이라도‘ 하는 마음이 치솟는다.
눈을 질끈 감고 문을 열었다.
.
.
.
창문 밖으로 빛이 희미하게 줄기를 이어 들어온다.
그 사이 먼지 조각들이 나풀대는 게 꼭 환영을 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반사되지 않는 볕을 쬐며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두 손으로 시들지 않은 국화꽃 한 송이를 만지작댄다.
만질 수 없는 사랑스러운 숨결이 불어온다.
꽃보다 어여쁜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그녀를 부른다.
’누나. 저 왔어요.‘
그녀는 투명히 달려와
내 품에 잠겼다.
.
본문
[자작유머] [단편] 2019년 귀신과의 동거일지

루리웹-4372286334
(5026121)
출석일수 : 7일 LV.1
25%
Exp.추천 1 조회 181 비추력 10
작성일 2025.07.14 (08:53:23)
IP : (IP보기클릭)175.202.***.***
2025.07.14 (08:53:23)
ID | 구분 | 제목 | 글쓴이 | 추천 | 조회 | 날짜 |
---|---|---|---|---|---|---|
63429467 | 공지 | 유머 게시판 통합 공지 | _루리 | 43 | 415541 | 2023.10.19 |
30617822 | 질문 | 프린터를 사고싶어요 근데 뭘 사야할지 모르겠어요 (10) | 루리웹-15536755 | 707 | 18:40 | |
1390437 | 블루 아카이브 | 이번 픽업의 모집포인트로 엘레프를 정가한다면 누구 엘레프를 정가해야하나요... (2) | 강철천사 쿠루미 | 165 | 20:26 | |
30710596 | 프라모델 이야기 | 에어브러쉬 노즐이 뿌러졌는데 새로 사야겠죠? (8) | 마지막잉여 | 411 | 20:23 | |
71502849 | 잡담 | 콘방미오 | 4 | 22:35 | ||
71502848 | 인방 | 굿뜨맨 | 6 | 22:35 | ||
71502847 | 잡담 | 루나이트 | 1 | 10 | 22:35 | |
71502846 | 잡담 | DDOG+ | 10 | 22:35 | ||
71502845 | 잡담 | 뒷북쩌는유게이 | 7 | 22:35 | ||
71502844 | 잡담 | 쿠메카와 미스즈 | 6 | 22:35 | ||
71502843 | 유머 | 호가호위 | 14 | 22:35 | ||
71502842 | 애니/만화 | 루리웹-1082530554 | 3 | 22:35 | ||
71502841 | 잡담 | 하루마루 | 6 | 22:35 | ||
71502840 | 잡담 | 흑강진유 | 6 | 22:35 | ||
71502839 | 유머 | aespaKarina | 1 | 51 | 22:35 | |
71502838 | 잡담 | 괴도 라팡 | 1 | 23 | 22:34 | |
71502837 | 유머 | 마크152 | 1 | 27 | 22:34 | |
71502836 | 잡담 | 울프맨_ | 56 | 22:34 | ||
71502835 | 잡담 | 날렵한두루미 | 11 | 22:34 | ||
71502834 | 게임 | 쿠르스와로 | 13 | 22:34 | ||
71502833 | 잡담 | 샤아WAAAGH나블 | 10 | 22:34 | ||
71502832 | 자작유머 | PC2 | 42 | 22:34 | ||
71502831 | 잡담 | 루리웹-36201680626 | 28 | 22:34 | ||
71502830 | 인방 | 무임승차대상 | 1 | 30 | 22:34 | |
71502829 | 유머 | 해피엔딩만 | 2 | 187 | 22:33 | |
71502828 | 유머 | 치지직갈껄 | 2 | 140 | 22:33 | |
71502827 | 잡담 | 루리웹-8514721844 | 104 | 22:33 | ||
71502826 | 잡담 | 신차원벨 | 1 | 41 | 22:33 | |
71502825 | 잡담 | 야옹야옹야옹냥 | 29 | 22:33 | ||
71502824 | 잡담 | 좀비쟝 | 3 | 87 | 22:33 | |
71502823 | 잡담 | 신기한맛이군🦉☄️🍃👾💫 | 1 | 46 | 22:33 | |
71502822 | 잡담 | 풍산개복돌RB | 33 | 22:33 |